▣ 성씨(姓氏) 종중(宗中) 문중(門中) 가문(家門)
1. 성씨(姓氏)
성씨(姓氏)는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인 칭호인 성(姓)을 높여 이르는 말”로 사람의 혈족(血族)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이다. 오늘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본·성·이름을 가지게 되어 있다
성씨란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의 칭호”로 일정한 인물을 시조로 하여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단계혈연집단(單系血緣集團)의 한 명칭이며, 곧 족적관념(族的觀念)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데서 결국 족(族)의 문제와 직접 연결된 것으로, 고대로 거슬러 올라 갈수록 더욱 밀착되어 있다.
후대의 성씨는 한자식 표기로서 이름 앞에 붙어 족계(族系)를 나타내는 동계혈족집단의 명칭을 가리키고, 이는 바로 중국식 출자율(出自律)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씨(姓氏)는 성(姓)과 씨(氏)의 합성어로, 고대 중국 이후에 성과 씨의 개념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오늘날 성(姓)과 씨(姓)의 구분이 없어져 성씨(姓氏)가 성(姓)을 높여서 나타내는 말로 쓰이나 초기 발생 단계에서 성(姓)과 씨(氏)는 엄격히 구분된 개념이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종족(宗族)의 인구가 늘고 거주 지역이 확산되자, 하나의 성(姓)에서 갈라진 지파(支派)는 새로운 거주지나 조상의 이름 등을 따서 자신들을 구별할 새로운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씨(氏)라고 한다.
성(姓)과 씨(氏)의 구별은 중국 하(夏), 상(商), 주(周) 3대(三代)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BC 770~BC 221)에 이르기까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당시 귀족들은 분봉(分封) 받은 국읍(國邑)의 지명(地名)이나 관직(官職), 조상의 자(字)나 시호(諡號), 작위(爵位), 거처(居處) 등을 씨(氏)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부자(父子) 사이에도 성(姓)은 같지만 씨(氏)가 다른 경우가 생겼고, 성(姓)이 다른데도 씨(氏)는 같은 경우도 나타났다. 그래서 성(姓)이 같으면 결혼을 하지 않았고, 씨(氏)가 같아도 성(姓)이 다르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성이 고대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삼국유사(三國遺事)》등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始祖)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 하면서 성을 고씨(高氏)라 하고, 동시에 신하인 재사(再思)에게 극씨(克氏), 무골(武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默居)에게 소실씨(小室氏)를 사성(賜姓)하였으며, 백제는 온조(溫祚)가 부여(扶餘)에서 나와 성을 부여씨(扶餘氏)라 하였다.
한편 신라에는 박(朴)·석(昔)·김(金) 3성의 전설이 있고, 제3대 유리왕(儒理王)는 6부(部)에 사성하였으니, 즉 양부(梁部)에 이씨(李氏), 사량부(沙梁部)에 최씨(崔氏), 점량부(漸梁部)에 손씨(孫氏), 본피부(本彼部)에 정씨(鄭氏), 한지부(漢祗部)에 배씨(裵氏), 습비부(習比部)에 설씨(薛氏)의 성을 주었다.
가야국(伽倻國)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은 황금알에서 태어났으므로 김씨라 하였다고 한다.
요약하면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나는 것이며 씨(氏)는 하나의 성(姓)에서 갈라진 계통의 구별을 나타내는 칭호로 그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이다.
예로써 세계오씨 시조 중국의 오태백(吳泰伯)공은 성(姓)은 희(姬)이고 씨(氏)는 오(吳) 이름은 태백(泰伯)이다.
오늘날은 성과 씨의 구분 없이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인 칭호’라고 말할 수 있다.
※ 주1.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백과, 다음백과, 위키백과, 용어사전, 판례집
2. 한국의 성씨 수: 5,582성(통계청 2015년 인구조사)
2. 씨족(氏族)
씨족(氏族)이란 “성씨가 같은 겨레붙이로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조상이 같거나 같다고 여겨지는 혈연 공동체”를 말한다.
씨족은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후손을 추적할 수 있는 동족집단’을 말한다. 이 용어는 계보(lineage)라는 용어보다 더 보편적이다. 계족의 구성원은 영구적으로 남는 경향이 있지만, 반면 씨족의 구성원은 변경이 가능하다.
씨족은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후손을 추적할 수 있는 동족집단(同族集團)으로 단일계통의 친족집단의 하나이다. 즉, 남성이나 여성 중 어느 한 쪽만을 통해서 출생계통(descent)을 찾는 것을 말한다. 남성을 통한 경우를 부계(父系), 여성을 통한 경우를 모계(母系)라 한다.
이와 같은 구성을 가진 단계친족집단에 속하는 것으로는 씨족(clan, gens) 외에 계족(系族: lineage)· 포족(胞族: phratry)· 반족(半族: moiety)이 있다. 그 시조가 수대(數代) 전이어서 그로부터의 출생관계를 실제로 계보(系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와 시조가 훨씬 먼 옛날의 존재이어서 계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로 구별되며, 전자를 계족(系族), 후자를 씨족(氏族)이라 한다. 씨족에서의 시조는 전설적· 신화적 존재이지만 계족에슨 계통이 분명하다.
씨족의 구성원은 특별하고 밀접한 권리의무 관계에 있으며, 씨족 내에서는 결혼하는 일이 드물다. 지역적 단위에서는 흔히 마을을 이루기도 한다.
3. 본관(本貫)
본관(本貫)은 “개인의 시조가 난 곳, 시조의 거주지 또는 성(姓)의 출발지역(出自地)”을 말하며 관적(貫籍)· 본적(本籍)· 성관(姓貫)· 본(本)· 관향(貫鄕)· 적관(籍貫)이라고도 한다.
본관은 보통 성(姓)과 같이 사용하며 개인의 부계 친족의 범위를 나타내는 데 쓰이는데 본관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었다.
성이 바로 부계(父系)의 혈통을 나타내면서 시간선상의 끊임없는 연속성을 보여준다면, 본관은 어느 한 시대에 정착하였던 조상의 거주지를 나타내므로 공간상의 의미가 크다. 즉, 성은 공동의 조상을 나타내는 부계의 핏줄을 뜻하며, 본관은 지명으로 표기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성립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성이 같고 본관이 같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부계친족의 친근성이 밀접해지는 것이지, 성과 본관의 어느 한 가지가 다른 경우는 판이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성과 본관의 상관관계를 열거하면 동성동본(同姓同本)·동성이본(同姓異本)·이성동본(異姓同本)·이성이본(異姓異本)의 경우가 있다.
본래 성씨와 본관제도는 계급적 우월성과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대두되었기 때문에 왕실·귀족·일반지배계급·양민·천민 순으로 수용되어 왔다.
본관제도는 정치적으로 백성을 지역별·계층별로 호구를 파악하여 신분질서를 유지하고 또 징세·조역·관리임용·군역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성씨와 본관제도는 중국의 것을 수용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본관제도의 형성과 변천과정 및 내부구조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자료는 15세기 초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 성씨조항이다. 여기에 의하면 성의 수는 약 250 내외이며, 본관 수는 현(縣) 이상만 하더라도 530여 개나 되고, 촌락을 본관으로 한 촌성(村姓)과 향(鄕)·소(所)·부곡(部曲)·처(處)·장(莊)·역(驛)·수(戍)까지 합산하면 15세기 이전에 존속하였던 본관 수는 1,500개가 넘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본관 수는 7,543개 조사되었으며 해주오씨는 18위로 나타났다.
4. 종중(宗中)
종중(宗中)이란 “성(姓)이 같고 본(本)이 같으며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의 모임으로 같은 조상을 둔 자손들의 자연발생적 모임”을 뜻한다.
종중은 같은 조상의 산소를 보살피고 제사를 모시며, 족보편찬과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종중은 같은 시조(始祖)를 모시는 대종중(大宗中)과 그 아래에 각각 중시조를 중심으로 모이는 중종중(中宗中) 또는 파종중(派宗中) 그리고 그 아래 조상 또는 지역조상(入鄕祖)을 모시는 소종중(小宗中)으로 나눌 수 있다.
종중이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하여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이므로, 종중의 이러한 목적과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공동선조와 성(姓)과 본(本)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별의 구별 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
종중의 성립에는 특별한 조직 행위나 서면으로 작성된 성문의 규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고유한 의미의 종중은 종중이 종중원의 자격을 박탈하거나 종중원이 종중을 탈퇴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 선조의 후손들은 종중을 양분하는 것과 같은 종중 분열을 할 수 없다.
한편 종중은 규약이나 관습에 따라 선출된 대표자를 갖추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면, 비법인 사단으로서의 단체성이 인정된다. 종중은 혈연에 의한 집단이므로 특별한 조직행위를 요하지 않지만, 종중이 성립하기 위해선 규약인 종약(宗約)이 필요하다. 종약에는 종중재산의 관리방법, 목적사업의 설정, 임원의 선임 등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5. 문중(門中)
문중(門中)은 “공동의 조상을 지닌 자손들로 이루어져 조상의 제사를 목적으로 조직된 부계 혈연집단으로 성(姓)과 본(本)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말한다.
문중은 다 같은 혈족 종중 중에서 촌수가 가까운 겨레붙이 순으로 종중(宗中)과 같은 뜻으로도 사용되나 엄격히 구별하면 문중은 일족(一族)의 한 지파(支派)로 소종중(小宗中)을 가리킨다.
문중은 조선시대 이래 조직적 조상숭배가 넓게 행하여진 과정 속에서 문중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으며 문중에 따라 그 격이 달라지기 시작하여 문중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족보(族譜)의 간행도 문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자손들은 이 족보를 통하여 유명조상의 문중원(門中員)으로서 인정받게 되고 그 조상의 사회적 명성까지도 계승받게 되는 것이다.
문중조직의 기능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조상숭배 예식을 행하며, 조상에 관계된 건물과 유적 등을 보전, 수리하는 기능이고, 둘째는 문중 구성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다.
중국의 문중은 넓은 종중(宗中)개념으로 종손(宗孫)중심이 아닌 같은 씨족장 중심으로 조직결속력이 약하며, 일본의 문중은 동족(同族)중심으로 일자(一子)가 단독으로 가계를 상속함으로 혈연을 강조하지 않고 비혈연자의 가계계승이 광범위하게 허용되어서, 혈연집단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 인지적(認知的) 계보관계(系譜關係)의 성격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문중은 비혈연자의 참여를 엄격히 통제하여 혈연의 순수성을 특히 강조하며,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중시하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결합의 중심도 종손과 문중으로 이원화되어 매우 안정적인 구조를 이루었다. 가장 전형적인 부계 혈연집단의 계보조직이라 할 수 있다.
6. 가문(家門)
가문(家門)이란 “혈연집단의 한 종류로 가족 또는 가까운 일가로 이루어진 공동체 또는 그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
종중(宗中)이 넓은 의미의 부계 혈연집단(父系血緣集團)이라면 가문은 좁은 범위의 부계 혈연집단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한 집안의 신분과 가풍(家風)”을 뜻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가문을 중요시 여겨 출신성분에 따라 사회적인 명성과 가풍을 가늠했다. 가문은 각종 규범·제도를 설정해 놓고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구성원들의 생활양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른 가문보다 모범적인 가문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인정을 받고 그 가풍의 뿌리를 정립해 나간다. 지금도 가문에 대한 인식은 우리 생활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즉,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가문은 부계계승의 원리를 따라 먼 옛날의 시조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조상들을 거쳐 현재에까지 이르렀고, 또한 앞으로도 무한히 계속될 초시간적인 연속체로 인식되었다.
가문은 때로는 한정된 범위의 부계친족집단(父系親族集團)인 ‘문중(門中)’과 같은 용어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가문의 개념은 단지 부계친족집단 이상의 것으로 가훈(家訓)·가풍·가법(家法) 등 이 집단의 구성원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각종 규범 및 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이런 규범들은 가문에 따라 독특하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한 가문을 다른 것과 구분 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각종 규범들이 잘 운용되고 가족 및 친족생활이 다른 집단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곧 가문의 자랑으로 간주된다.
효자·효녀·열부 등이 나온다는 것은 ‘가문의 자랑’이요,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곧 ‘가문에 먹칠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아도 가문은 가족집단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확실히 가문은 우리의 전통적인 부계친족조직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부계집단 이상의 복합적인 개념이요, 초시간적인 제도체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이룩된 생활양식이 얼마나 확고하게 정립되어 전통으로 뿌리내렸는지, 그리고 그 집안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명성을 인정받고 있는지는 바로 이른바 ‘뼈대 있는 가문’의 척도가 된다.
이와 같은 가문의 관념은 오늘날에는 비록 많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지속되어 우리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7. 씨족(氏族) 종중(宗中) 문중(門中) 가문(家門) 요약
씨족(氏族)이란 “성씨가 같은 겨레붙이로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조상이 같거나 같다고 여겨지는 혈연 공동체”로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예로써 세계오씨 시조인 중국의 오태백(吳泰伯)공이 대표적이다.
종중(宗中)이란 “성(姓)이 같고 본(本)이 같으며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의 모임으로 같은 조상을 둔 자손들의 자연발생적 모임”을 뜻한다.
종중은 같은 조상의 산소를 보살피고 제사를 모시며, 족보편찬과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종중은 같은 시조(始祖)를 모시는 대종중(大宗中)과 그 아래에 각각 중시조를 중심으로 모이는 중종중(中宗中) 또는 파종중(派宗中) 그리고 그 아래 조상 또는 지역조상(入鄕祖)을 모시는 소종중(小宗中)으로 나눌 수 있다.
문중(門中)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가까운 집안으로 공동의 조상을 지닌 자손들로 이루어져 조상의 제사를 목적으로 조직된 부계 혈연집단”을 말한다.
문중은 다 같은 혈족 종중 중에서 촌수가 가까운 겨레붙이 순으로 종중(宗中)과 같은 뜻으로도 사용되나 엄격히 구별하면 문중은 일족(一族)의 한 지파(支派)로 소종중(小宗中)을 가리킨다.
가문(家門)이란 “혈연집단의 한 종류로 가족 또는 가까운 일가로 이루어진 공동체 또는 그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문을 중요시 여겨 출신성분에 따라 사회적인 명성과 가풍을 가늠했다. 가문은 각종 규범·제도를 설정해 놓고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구성원들의 생활양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른 가문보다 모범적인 가문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인정을 받고 그 가풍의 뿌리를 정립해 나간다. 지금도 가문에 대한 인식은 우리 생활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요약하면 씨족, 종중, 문중, 가문은 같은 조상의 피를 나눈 혈연집단을 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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